‘좌파라서 다행이야!’ 한국 사회의 뒤틀린 이념 지형을 치유하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민주당의 ‘탈부르주아화’(좌파 정당화)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 정당들의 주류화이다. 기사입력시간 [157호] 2010.09.16 10:01:00
‘좌파’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상반된 두 의미 맥락에 걸터앉아 있다. 첫째는 일부 지식분자가 자신의 ‘지식인 됨’을 뽐내려고 이 말을 꺼내 드는 경우다. 다시 말해 이때의 ‘좌파’는 일종의 이념적 장신구다. 둘째는, 사실 이쪽이 훨씬 압도적인데, 극우 세력이 자신의 반대파에게 낙인을 찍기 위해 이 말을 불러내는 경우다. 이 맥락에서 좌파라는 말은 흔히 ‘친북’이나 ‘반미’ 같은 ‘으르렁 말’과 겹친다. 그래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나 민족주의자들도 좌파라는 주홍글씨의 서판(書板)이 된다. 좌파의 역사에서 일부 사회주의자가 자유주의자들을 ‘주(主) 타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또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국제주의라는 점을 생각하면, 극우 세력의 이 ‘좌파 타령’은 우스꽝스러운 용법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용법이,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친 한국 정치 지형에서는 적잖은 호소력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뒤틀려 있다는 핑계로 좌파라는 말을 버릴 수는 없다. 이 말은 프랑스 혁명 이래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상징하는, 다시 말해 인간의 자존을 떠받들어온 귀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좌파란 무엇인가? 그것이 가리키는 잡다한 레퍼런트(대상) 가운데 하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시장에 간섭해야 한다고 여기는 정치 세력이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좌파는 누구인가?
한국 정치 지형에서 좌파는 누구인가?
먼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또는 사회당 당원들과 그 지지자들이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국민참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어떤가? 그들 가운데 일부는 좌파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정당들 자체는 중도우파 세력, 곧 자유주의 세력이다. 그러니 한국 정치 지형은 ‘우파 과잉’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선전) 속에서 좌파는 흔히 용공주의자(로 여겨진)다. 사실은 이것이 한국의 리버럴한 주류 정치 세력들로 하여금 좌파를 자처하기 힘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좌파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1990년대 초에 이미 파탄했다.
하나 공산주의의 파탄이 그대로 좌파의 파탄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두고서 논쟁을 벌이다 떠들썩하게 결별한 프랑스 지식인 둘을 알고 있다. 그때 이 전쟁을 미(美) 제국주의에 맞선 불가피한 항전으로 규정한 사르트르만이 아니라, 북한의 선공(先攻)을 좌파답지 않은 일탈로 규정한 메를로퐁티도 우리는 좌파로 여긴다. 때때로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과격했던 사르트르의 정치적 실천은 오늘날 거의 아무런 메아리도 얻고 있지 않지만, 비(非)공산 좌파들의 연대와 협력을 모색한 메를로퐁티의 정치적 실천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며 메아리를 얻고 있다.
그 이념적 계보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에게까지 올라가는 이 반공 좌파의 생김새는 여러 가지다. 어떤 좌파는 시장에 비교적 너그럽고 또 다른 좌파는 엄격하다. 어떤 좌파는 노동조합과 밀착해 있고, 또 다른 좌파는 노조와 데면데면하다. 그러나 모든 좌파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에 우호적이다. 이 당들은 ‘평등한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에 정신적 기원을 둔다. 프랑스 혁명은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이었지만, 그 부르주아적 가치 속에 민주주의를 녹여냈다는 점에서 ‘탈부르주아 혁명’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뒤틀린 이념 지형을 치유하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민주당의 ‘탈부르주아화’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 정당들의 주류화이다. 둘 다 쉽지 않은 과제지만, 기존 민중 정당들의 주류화보다는 민주당의 탈부르주아화가 덜 힘들어 보인다. 민주당의 탈부르주아화란 민주당이 좌파 정당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10년 집권기 동안 전형적 우파 정당의 길을 걸었으면서도 ‘좌파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민주당은 이제 진짜 좌파 정당이 되어야 한다. 즉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 속에서만 존재하는 좌파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좌파가 되어야 한다. 정동영씨의 ‘담대한 진보’라는 게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민주당의 좌파 정당화를 가리키는 것이기를 바란다. ‘좌파’라는 말은 일부 지식분자의 이념적 장신구를 넘어서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려는 노력의 기호가 되어야 한다. 그 노력 속에서 ‘좌파면 어때?’라는 소극성은 ‘좌파라서 다행이야!’라는 적극성으로 변할 것이다.
좌파가 가진 원래적 의미가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었던가?
"프랑스 혁명 이래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상징하는, 다시 말해 인간의 자존을 떠받들어온 귀한 단어"라니... 호오...
이제 정치권은 좌우 편가르기 시작인가?
글쎄...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게 다행스런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좌우란 늘 현실속에서 상대적인 개념으로만 사용될 뿐이라... 그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