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원리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원리를 유일한 실천 지침으로 삼는 것은 편리하고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깊고 섬세한 사색의 귀찮음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근본주의에 끌리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쉽사리 평화 지상주의자가 되거나 자유 지상주의자가 되거나 생태 지상주의자가 된다. 민족이나 계급, 종교적 신념처럼 덜 보편적인 가치들도 근본주의를 추동한다. 그러나 인류사는 그런 근본주의들이 그것들의 선한 의도를 훨씬 뛰어넘는 해악을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인간 존재와 사회 구성의 복잡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그 모순적 존재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매우 불투명한 유체(流體)다. 그것들을 해석하고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원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나 자유나 생태 같은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거대 개념이겠으나, 도덕도 우리를 근본주의 쪽으로 유혹하는 매력적 원리다. 여기서 ‘도덕’은 매우 평이하게 쓴 말이다. 다시 말해 도덕에 관한 철학적 논의 바깥에서 인간의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로 존재하는 도덕을 가리킨다. 물론 우리는 살인이 도덕적이 되는 극한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고, 이른바 ‘도덕의 안경 모델(spectacles model of morality)’에 따라 인간의 행위를 포함한 세계가 아무런 도덕적 가치 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면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평범한 이성과 양심이, 어떤 것이 도덕적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무리 없이, 그리고 물의 없이 가늠하는 보편적 잣대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평화나 자유 같은 근본주의의 다른 매개물처럼, 그것들을 쓸어 담은 도덕이라는 가치도 고귀한 외양을 지녔다. 그런 한편 다른 근본주의들처럼 도덕적 근본주의도 해악을 낳는다. 도덕은 기존 주류 가치들에 바탕을 두기 십상이어서 도덕 근본주의는, 예컨대 부크먼의 도덕재무장운동(MRA)에서 보듯, 보수주의자들을 돕는다. 그것은 개인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옥죄기도 하고,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 간간이 보듯 비뚤어진 열정의 원기소가 되기도 한다. 반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도덕적 원칙이 없다면, 그 공동체 자체가 견고하게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도덕은 한 사람의 내면을 통합하는 원리들의 총합일 뿐만 아니라, 그 개인들을 공동체에 통합하는 원리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한국 사회가 목격한 가장 불길한 현상은 도덕의 총체적 붕괴다. 물론 도덕 붕괴가 이명박 정부와 함께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전쟁에 이은 오랜 독재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도덕의 공간을 점점 좁혔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도덕 붕괴를 가속화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권력 중심부의 도덕불감증, 도덕 허무주의 퍼뜨려
여기서, 얄궂은 역사적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거의 스무 해 전 자신이 집권하자마자 “정치권력과 부(富)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라는 도덕적 레토릭(수사)을 구사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집권기에 이르러, 재산 현황이나 그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한 도덕적 심문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실행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권의 도덕 드라이브가 설령 정략에 밑바탕을 둔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당대 민심에 부합하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버젓한 민주화의 시동을 건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고위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이 김영삼 정부 시절보다 훨씬 느슨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대선 기간 중 숱한 도덕적 의혹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 다수가 비슷한 유형의 도덕적 흠을 드러낸 바 있다. 김영삼 정부 때라면 지금 고위 공직자 상당수는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 중심부의 이런 도덕불감증은 사회 전체에 도덕 허무주의를 퍼뜨린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 다수가 군대에 안 간 사회에서 ‘조국을 위한’ 군 복무를 흔쾌히 여길 젊은이는 드물 것이다. 가장 공정해야 할 권력기관들이 돈과 얽혀 있는 사회에서, 배금주의를 깔볼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른 모든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도덕 근본주의는 나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도덕 허무주의다. 그것은 공공연하게, 또는 슬며시, 대한민국 공동체의 피륙을 찢어내고 있다.
유체, 근본주의, 유체, 암묵지, 안경 모델... 부크먼, 도덕재무장운동, 원기소...
이 어려운 용어들이, 이 단어들이 이 글의 맥락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을까?
도덕 근본주의로 매도하면서 도덕 허무주의를 만들어내는 MB정권의 문제점을 짚으면서 이렇게 어렵게 글을 써야 하는걸까?
아니, 내가 그새 엄청 무식해진건가?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읽힐까?
아무튼...
고위층은 그 사회의 지향점이다. 따라하기 나름이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다'는 속담이 이처럼 제대로 들어맞는 데도 잘 없을 것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고위층을 보면서 국민 대다수 서민대중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공정한 사회.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불공정은 덮고 지금을 원점으로 이제부터 공정하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은, 위험하다.
공정의 잣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공히 적용되어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