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국의 ‘논객 문화’를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이른바 ‘증오 마케팅’에 능란한 논객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정의로운 분노의 표출은 꼭 필요하며 그것까지 싸잡아 ‘증오 마케팅’으로 부르는 건 매우 부당하다. 사실 문제는 ‘증오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성찰의 부재다. “나는 늘 옳고 완벽하다”는 암묵적 전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파적 대중은 오히려 성찰이 없는 그런 전제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함으로써 각 그룹별로 갈가리 찢긴 채 각자 극단으로 치닫는 이른바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를 촉진하는 인터넷 때문에 악화된 현상인 것 같다.
이를 개탄해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니 개탄 이전에 스스로 냉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나와 우리’ 역시 왜 그런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하는 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이해를 위한 좋은 사례가 바로 미국의 폭스뉴스(Fox News)다.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과 진보파들이 이를 갈 정도로 ‘진보파 죽이기’에 앞장섬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우익 미디어다. 폭스뉴스 성공의 비결은 간단했다. 노골적인 진보 공격으로 보수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폭스뉴스의 최고경영자인 로저 에일스는 2003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공화당 방송을 경영한다는 비판에 화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를 그렇게 부를수록 더 많은 보수 성향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을 볼 것”이라고 응수했다. 폭스뉴스는 그런 ‘편가르기 마케팅’의 일환으로 2004년 대선 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가 북한 김정일의 총애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2008년 6월엔 한 ‘뉴스쇼’의 고정 출연자가 “북한의 김정일이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선까지 나아갔다.1) 그렇게 김정일에 대한 병적 집착을 드러내면서 증오를 부추겨야 장사가 잘되니, ‘증오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를 넓히기 위해 ‘증오 마케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건 폭스뉴스를 통해서 입증된 듯 보였다. 폭스뉴스의 애청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지 마라. 그저 우리가 믿고 있는 바들을 더 많이 보여달라. 그러면 우리는 그 견해를 읽으며 계속해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를 결집시킬 내용을 달라. 우리가 환호할 수 있는 사람을 달라!”2)
미국의 인류사회학자 비키 쿤켈(Vicki Kunkel)이 『본능의 경제학(Instant Appeal)』(2009)에서 내린 분석이다. 쿤켈은 “몇몇 사회학 연구 논문들은 사람들이 심리적 지름길로서 자신이 아는 브랜드로 달려간다고 명확히 결론짓는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립적 뉴스 해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가려내는 데는 너무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문에 자신과 견해를 같이하는 방송국에서 해석한 뉴스를 듣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 내용을 다시 생각할 일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편향적인 보도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말과 다르다. 그 증거가 바로 시청률이다. 편향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본능적 성향은 많은 블로그와 웹사이트들이 성공한 비결이기도 하다. 비슷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은 비슷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글을 보고 싶어 한다.…… 편향성은 이익이 되는 장사다.”3)
미국엔 그렇게 ‘이익이 되는 장사’로 명성과 엄청난 수입을 얻은 이들이 많다. 방송 분야의 대표적 인물로는 하워드 스턴(Howard Stern), 러시 림보(Rush Limbaugh), 글렌 벡(Glenn Beck) 등을 들 수 있다. 정계의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조지 부시(George W. Bush)다. 쿤켈은 “우리는 이들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중간은 없다. 이들의 언어 지문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도 드러낸다. 이들은 대담하고 뻔뻔스러우며, 그 때문에 논쟁의 중심이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또 무언가를 지지하고 고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토록 큰 인기와 권력을 누리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이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지자를 얻기 위해서는 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열정을 보이며 당신의 적을 향해 더 많은 전투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끌어당김과 밀침은 단순히 보편적인 물리학의 법칙이 아니다. 이는 지위와 권력, 권위를 성취한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비판자나 적이 없다면, 강력한 지지자 역시 얻을 수 없다.”4)
1998년 중간선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한동안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던 제시 벤추라(Jesse Ventura)라는 인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기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쿤켈의 분석은 단순명쾌하다. “벤추라의 당선과 계속되는 그의 인기는 논쟁을 일으키고 적을 만들려는 인간의 본능과 관계된다. 알다시피 ‘갈등’은 또 하나의 인간의 보편성이다. 그리고 벤추라는 확실히 그런 갈등을 유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본능에 어필했던 것이다.”5)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증오 마케팅’은 이념과 정치성향을 초월해 존재하는 미국 정치의 일상이다. 물론 한국도 다를 게 없다. 아니 어느 나라인들 안 그러랴. 어쩌겠는가. 그게 인간의 속성인 것을. 그러나 특수 사례이긴 하지만,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경우처럼 ‘화합’의 메시지로 권력을 잡는 경우도 있다. 정치의 대부분이 갈등과 대결과 증오의 동력으로 작동하다가도, 주식에 너무 질리면 가끔 별식을 먹고 싶은 것처럼, 화합과 포용의 메시지가 먹히는 때도 도래하는 법이다. 한국 사회가 그런 별식을 기대하기엔 아직 멀었는가?
| 주 | 1) 강인규,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미국, 미국문화 읽기』, 인물과사상사, 2008. 2) 비키 쿤켈(Vicki Kunkel), 박혜원 옮김, 『본능의 경제학: 본능 속에 숨겨진 인간행동과 경제학의 비밀』, 사이, 2009, 86쪽. 3) 비키 쿤켈(Vicki Kunkel), 같은 책, 85~86쪽. 4) 비키 쿤켈(Vicki Kunkel), 같은 책, 79~80쪽. 5) 비키 쿤켈(Vicki Kunkel), 같은 책, 77쪽.
2010/09/17 [15:52] ⓒ인물과사상
증오 마케팅... 그래서 경제학인가? 왜 경제학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조금 의아하지만, 내용은 정치문화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논객 문화 역시 일방적인 "까기"와 거기서 얻어지는 "통쾌함"에 점차 쏠리다 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
이 성향의 대표적인 논객은 단연 진중권이겠지. 보수쪽에는 진중권을 "까"는 듣보잡이나 신혜식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