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 노예들”의 해방의 길 2010-11-0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국내 뉴스를 보다 믿을까 말까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기사 주제는 “시간강사제도, 33년 만에 사라진다”였다. 사실, 시간강사 없는 대학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달로 치면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로 연명하면서도 전국 대학 교양강좌의 절반 이상, 전공과목의 36% 정도를 그들이 담당하고 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 많은 사립대학들의 운영이 가능해지고, 거의 구미권 수준과 비교가 가능한 전임교원의 임금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진지한 “시간강사제도 폐지”라면 고등교육의 “혁명”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물론 뉴스를 자세히 보니 이는 통과된 법이 아니고 통과 과정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개악될지 모를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의 “안”일 뿐이었다. 즉, 시간강사제도가 “사라진다”기보다는 수만명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연구를 제대로 할 기회를 빼앗아 그들을 만성적 빈곤, 불안, 우울증, 그리고 극단적 경우에는 자살로 몰아내는 이 제도를 이번 정권이 차후의 “수정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진지한 의미의 “시간강사제도 수정”도 전혀 아니었다. 단, 최악의 조건에 처해진 비정규직인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아주 약간 개선시켜주는 표피적 “시혜”와 대학 내 비정규직 고용을 제도화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대할 뜻이 보였을 뿐이다.
이 “안”에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대목들은 “시간강사”라는 명칭을 폐지해 대학 비정규직 교원을 “강사”로 통칭하고 그들을 “교원”으로 인정해 그 시급을 현재의 4만여원부터 단계적으로 약 8만원으로 올리는 등 처우 개선을 단행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교원 지위 부여”와 “시급제 보수 지급”은 서로 충돌하는 데에 있다. “진짜” 교원의 보수는 연봉으로 나오는 것이고, 비정규직 강사들에게는 계속해서 시급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명칭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계속 차별하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시급 수준을 절대빈곤선에서 상대빈곤선으로 올려준 것은 외형적으로 “시혜”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주당 아홉 시간의 강의담당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비정규직 강사는 어차피 전임직 교원의 평균 보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돈보다 어쩌면 더 핵심적인 부분은 “지위”, 즉 신분이다. 사통위의 “안”이 비정규직 교원들에게 “교원지위 부여”를 하는 것처럼 주장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학기 단위 계약 관행은 일년 단위 계약 제도로 바꾸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계약을 일년으로 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교원으로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실세” 전임 교수의 대필 요구 등을 당당히 거절할 만큼의 지위 안정성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이는 아주 순진한 착각이다. 특별한 상황(불가피한 과목 폐지 등)이 발생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교원이 자동적 근무 지속을 요구할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전임직 관리자들의 횡포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요구한 대로 대필을 해도 정규직을 얻지 못한 강사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상급자가 어떤 사역을 시켜도 이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아탑의 노예들”을, 그 상급자들과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가 진정하게 해방시켜줄 리는 만무하다. 노조 가입과 파업 등 연대투쟁만이 정상적인 연구자 생활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다 빼앗긴 비정규직 교원들에게 좀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비정규직 교원들이 제조업 비정규직 이상으로 분산, 원자화되어 상급자와의 개인적 예속관계에 옭매여 있는 상황에서는 연대투쟁을 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아... 시간강사의 시급이 4만원쯤밖에 안됐구나. 2학점짜리 과목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3군데 캠퍼스에서 동시에 강의한다 해도 일주일에 24만원, 한달에 잘해야 100만원. 차비 빼고 나면 진짜 생활비도 없겠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숫자로 풀어보니 그들이 왜 빈곤하며 '불안',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게 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그저 원칙만 지켜지면 될 일인데... 아... 이 나라에서는 그저 이렇듯 사소한 원칙 하나 마저도 이처럼 지켜지기가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