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한국사회-국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1) 집단적 비명횡사 공화국, 가만있으면 안된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월호 참사 후 어느 날 라디오를 켰더니 희생학생들의 옷을 보관하고 있는 세탁소 주인아저씨의 사연이 나왔습니다. 목젖 밑이 울컥하였습니다. 이후 일요일 새벽 안산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앳된 얼굴의 영정을 하나하나 보다가 ‘몽셀 통통’이라는 과자 상자를 보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희생자 학생 중 한 명이 이 과자를 좋아했나 봅니다. 또는 조문하러 온 학생이 자신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용돈을 털어 샀는지도 모릅니다.
분향소와 희생자들이 다녔던 학교 근처의 주택들을 둘러보니 유명 브랜드와는 거리가 먼 작은 서민용 아파트와 연립주택이었습니다. 여기서 공부하고 놀며 꿈을 키웠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희생자 학생 중 한 명이 장관, 국회의원, 장군 집 자식이었다면 구조 활동이 어땠을까 하는 ‘편향적 상상’이 들었습니다. 귀갓길에서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 사고 당일 오전과 오후에 대한민국에 있는 구조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지 않았는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죽음을 단지 ‘자살’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는 ‘경제적 타살’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같은 일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은 단지 ‘사고사’가 아닙니다. 이는 탐욕에 빠진 개인, 기업, 정부에 의한 ‘제도적 타살’입니다. 이 ‘제도적 타살’의 주범과 공범에게 엄정한 정치적·법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사과에서 ‘적폐’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몸담고 있는 정당과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이 ‘적폐’의 일부라는 점을 직시하길 바랍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만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한 사람과 세력이 누구인가요. 또한 박 대통령은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별하지 않고 규제를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제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답하길 바랍니다.
불법적으로 선박을 개조하고 화물 과적을 지시한 자, 선박안전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문제점을 눈감아 준 자, 선박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기한 자, 선박사고 후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구조임무를 소홀히 한 자를 샅샅이 밝혀내야 합니다. ‘해피아’(해수부 마피아) 등 이들의 정치적·사회적 뒷배 역시 징치(懲治)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내에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로 설치되어 있던 ‘위기관리센터’를 해체시킨 자, 작년 국가재난관리체계를 최고 등급인 ‘우수’로 평가한 자, 규제혁파 운운하며 노후 선박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안전규제를 완화시켜 준 자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번 참사는 재해예방과 국민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 제6항이 쭉정이만 남은 조항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재난과 위기관리는 정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초당적 협력을 통하여 관련 업체에 대한 규제를 세밀화·엄격화하고, 재난과 위기 종류별로 통합대응훈련을 상시화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비로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믿고 있다가 배 안에 갇혀 공포와 고통 속에서 손가락뼈가 부러지도록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은 학생 등 탑승자들과 그 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돈과 이윤에 의해 주변화(周邊化)되어 버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다시 국가와 정부의 중심목표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좌파 발본색출” 운운하며 색깔론을 펼쳤고, 권은희 의원은 유가족을 “선동꾼”이라고 비방했고, 윤상현 의원은 추모리본 달기를 거부했습니다. 김황식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박 대통령을 지키자”는 문자메시지를 돌렸습니다. 이들에겐 무능력, 무책임, 무대책의 ‘삼무(三無)정권’을 수호하고 ‘최고 존엄’을 옹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편 새누리당 송영선 전 의원은 이번 참사가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기에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고 평했습니다. 이들에게 죽음은 숫자일 뿐입니다.
사실 기득권 체제는 국민에게 언제나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왔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정권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고문하거나 사건을 조작할 때도, 4대강을 파헤쳐 국토를 유린하고 생태를 파괴할 때도, 정보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민주헌정을 뒤엎었을 때도, 재벌이 엄청난 경제범죄를 일으킬 때도, 언론이 왜곡보도를 할 때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있지 않겠다”로 대응해야 합니다. “내 잘못도 있다”며 자책만 할 때가 아닙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 그렇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집단적 비명횡사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또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릅니다. 이런 제도와 체제 아래에서 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예비했고 또한 제2, 제3의 참사를 예고하고 있는 제도와 체제를 바꾸어야 합니다.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항구화하는 ‘원수’이자 ‘암 덩어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고 이권과 자리 확보에 여념이 없는 각 분야 정경유착 마피아들의 손발을 묶어야 합니다. ‘대한민국호’의 승객인 우리가 나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선주와 선장과 선원을 감시하고 감독하고 질책하고 나아가 갈아치워야 합니다. ‘대한민국호’는 우리와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이 타고 있는, 그리고 우리 후손이 탈 배이기 때문입니다.
가만있지 맙시다. 가만있으면 안됩니다.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조국 교수가 오랜만에 칼럼 하나 제대로 올렸다.
전적으로 공감되는 글이다.
그런데, 이미 빨갱이로 낙인 찍힌 조국 교수가 역시 빨갱이 신문인 경향신문에 올린 글을 누가 볼까?
결국 볼 사람만 보고 애초에 안 볼 사람들은 보지 않겠지... 정작 봐야 할 사람들이 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