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도서출판 야간비행 (2002-06) (읽음: 2002-12-04 03:52:55 PM)

- 김규항 칼럼집

 

-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세상에 제출한다는 것은 운동이다. 내 글이 자본의 신과 싸우는 일에, 사람들의 위엄과 존경을 되찾는 일에 개입하는 운동이길 바란다. (지은이의 머리말 중에서)

이 칼럼집은 지은이가 98년부터 3년 동안 쓴 글들을 추스린 것이다.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전세계적 우경화와 자본주의 승리가 확실하게 보였던 10년의 세월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언급한다.

수많은 칼럼집과 평론집이 있지만 김규항의 글은 독특한 빛깔이 있다. 그건 간결함과 명료함 속에 보이는 날 선 비판정신 때문일 것이다. 일상을 통해 세상을 겨냥하는 그의 글들은 읽을 맛과 함께 사고와 반성의 긴 여운을 남긴다." (리브로 책소개글)

-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나와 어쩜 이리도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 많을까 신기했다. 그러나 그 신기함은 곧 풀렸다. 나와 성장 배경이 매우 비슷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예수와 사회, 그리고 사회주의" 이 거대하고도 의미심장한 화두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 꽤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일일이 적어보련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말)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싸우는 사람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다. 유토피아는 점심을 거르는 아이들을 알면서도 오늘 점심은 뭐로 때우나 고민하는 시민들의 구차한 삶 속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전직 혁명가의 새삼스러운 외침 속에도 없다. 유토피아는 '아무 것도 아닌' 준법서약서 한 장 못 쓰고, 아들을 기다리는 칠순 어머니에게 [오래 사셔야 돼요.] 라고 말하는 내 동갑내기 장기수의 영혼 속에, 사람들이 '미망'이라 비웃는 그 고결한 영혼 속에나 있다." (p. 60)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 (p. 62-63) 

"금강산에 유람선이 뜨면 '구사대'가 생각난다. 금강산을 그 주인인 왕회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왕회장을 생각하면 그의 '구사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왕회장의 잔치, 소떼를 몰고 평양에 가서 혈육을 만나고 김정일과 사진을 박고 만찬장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금강산에 자기 유람선을 띄우고 금강산 어귀에 자기 주유소를 세우는 그의 행복한 잔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p. 75) 

그렇다, 나도 정몽준 하면 생각나는게 왕회장이요, 구사대다. 이 고리를 연결하는 것이 과연 억지일까. 

"교회는 언제나 영혼을 말했지만 영혼을 얻는 일이 돈을 잃는 일이라면 그마저도 없었을 거였다." (p. 78) 

핵심적인 문구다! 내가 교회를 떠난 이유가 문득 생각난다... 

"돈을 먹여서 군대를 빠지는 일이 끔찍한 죄인 건 단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않거나 남 하는 고생을 피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대신 군대에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님 아들 빠진 자리를 머슴 아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시민사회에서 말이다. 군대란 안 갈수록 이익인 곳임에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한국의 신체 건강한 청년이라면 그저 눈 딱 감고 3년 썩어줄 필요가 있다. 어쩔 것인가. 후진 나라에 태어난 것도 죄라면 죄 아닌가. ... 개새끼들." (p. 108)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을 지나가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교회는 물질축복은 성실한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예수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언제나 세상에서 천대받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예수는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섬기는 빛과 소금이 되라 했지만, 교회는 세상의 더러운 죄를 들어와서 씻으라 하지 않는가.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동산과 벌판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했지만, 교회는 성전을 짓고 찬란하게 치장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 가르치지 않는가." (p. 115) 

"오늘날 근대성을 가진 나라라면 지식인이 극우신문에 기고하는 일만으로도 사회적 스캔들이 된다는 상식쯤은 갖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신문이 극우신문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인정한다." (p. 140)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p. 161) 

"내가 예수의 삶에서 넘어설 수 없었던 지점은, 그가 보여준 삶의 폭이 인간이 이룬 어떤 선한 그룹에서조차 결국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몰려 죽었지만(당시 로마 식민지령에서 십자가 처형은 민족해방 운동가들에게 사용되었다. 물론 전시 효과 때문이었다.) 정치범이 아니었다... 예수의 방식은 사람들의 욕망을 거슬렀다." (p. 187) 

"의사들이 의약분업 실시로 더 이상 국민들의 몸을 더렵혀 가며 제 밥그릇을 채우기 어려워졌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제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 23년 동안 저지른 그들의 범죄를 그 범죄의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고백하고 참회하는 일이었다. 그 다음 의사들이 할 일은 현재 한국의료제도의 이런저런 모순들을 국민들에게 가장 겸손한 자세와 가장 친절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렇게만 했다면 국민들이 어쩌겠는가.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그런 의사라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불쌍한 국민들이 말이다." (p. 252) 

"소비에트 선동극 속의 민중들은 생으로 지어낸 인물들이 아니다. 억압의 상태에서 싸우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순결해진다. 어떤 졸렬한 인간도, 억압의 상태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순간 가장 순결해지는 것. 우리가 사람인 이유이자 역사에 절망하지 않는 이유다." (p. 268) 

그렇다. 요즘 효순-미선이의 죽음과 미군반대에 뛰어든 이정현을 비롯한 연예인들... 그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는 듯하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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