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991년 5월 - 도서출판 이후 (2002-02) (읽음: 2003-02-21 10:22:50 AM)
- 91년 5월 투쟁 청년모임
- "11년 전 청명한 하늘을 찢어 놓았던 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91년 4월 26일 명지대의 한 학생이 백골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거의 두 달 동안 '강경대는 싸우고 있다'는 깃발 아래 수십 만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전개했다. 이 책은 그 사건이 촉발한 60여 일간의 정치적 시공간에 '1991년 5월 투쟁'이란 이름을 붙인다. '항쟁'도 아닌 '투쟁'이라는 다소 애매한 명칭은 91년 5월이 갖고 있는 현재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세상이 80년 광주, 87년 6월을 이야기할 때 91년 5월은 잊혀진,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현대 정치사의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아무도 91년 5월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대부분 그날들의 사랑과 분노, 절망과 슬픔을 꺼내놓길 주저했다. 역설적이지만 91년 5월엔 이름이 없다. '분신정국,' 아마도 이 정도의 표현이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언어일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어쩌면 죽음이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닐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와 공장에서, 거리에서, 혹은 밀실에서, 혹은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죽음에 이르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년 5월 투쟁에서처럼 짧은 기간에 11명이 분신하는 등 모두 13명이 사망한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투쟁의 참여자들과 지지자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상처를 남겼다. 더구나 검찰이 조작한 '유서대필 사건,' 언론 권력화의 맹아를 드러낸 '외대 사건'은 현재까지도 살아 남은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아픈 기억들이다. 이 책은 91년 5월 당시 애써 두려움을 이겨내고 거리에서 슬로건을 외치며 작은 눈망울로 세상을 훔쳐보던 대학생들이 이제 서른을 갓 넘은 젊은 연구자가 되어 11년 전의 기억들을 복원하고, 때로는 내면적인 고백과 성찰을 통해, 때로는 역사적, 이론적 모색을 통해 한 시대의 슬픔과 분노, 공포와 절망, 그 이면의 기쁨과 희망을 올곧게 드러내려는 노력의 작은 결실이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
어떤 영화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은 91년 5월의 죽음과 분신을 목도하면서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동세대인들의 개인적 치유 과정일지도 모르며, 또한 이로부터 91년 5월 투쟁에 관한 사회적인 치유 과정이 시작되길 바라는 작은 실천일 것이다.
이 책은 99년 겨울 어떤 자리에서 아주 우연하게 2001년이 91년 5월 투쟁의 10주년임을 문득 계산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91년 5월 투쟁의 10주년 사업을 준비해보자는 이야기가 오고간 후 조금씩 모양을 갖춰갔다. 처음엔 주변의 친구들을 모았고, 그후 91년을 전후하여 대학을 다녔던 청년 활동가, 사회인, 연구자들이 알음알음 참여하여 2000년 12월에 정식 모임을 꾸렸으며, 그 과정에서 2000년 11월에 '성찰적 반성과 희망의 모색' 심포지엄, 그리고 91년 5월 투쟁 10주년 사업의 하나로 2001년 5월에 '폭력과 죽음의 정치를 넘어'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책은 그 두 번의 심포지엄의 발표문들을 묶어낸 것이다.
사실상 이 책은 그 이름에 비견되는 어떤 구체적인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91년 5월 투쟁 10주년 사업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청년모임>은 이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다만, 앞으로 진보적 청년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기억들
이 책은 젊은 연구자들의 발표문들을 묶었지만, 심포지엄을 통해 당시의 정황과 서로 다른 주체적 입장을 이해할수 있도록 도와줬던 여러 목소리들을 수록했다. 당시 강기훈 씨 변호를 맡았던 이석채 변호사, 당시 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원택 씨, 당시 인하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지금 청년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윤철 씨, 당시 91학번으로 대학 1학년이었던 이가영 씨, 당시 독일에서 유학을 하며 91년 5월 투쟁을 위해 독일에서 여러 실천을 모색했던 양영미 씨 등이 그들이다. 이는 결코 연구 논문에서 나올 수 없는 개인적 체험의 소중한 기록일 것이다." (인터파크 책소개글)
- 91학번 선배들은 늘 91년 5월 투쟁에 대해 언급할 때면 강한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은 나의 그런 의문을 약간이나마 해소해주었고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었다.
- 강경대... 김귀정... 그리고 정원식 총리 밀가루 계란 세례... 김지하, 그리고 박홍. 91년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다. 노태우 정권 말엽, 소위 '분신 정국'이라는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 당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던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부분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무튼 유익하게 읽었다.
- 에섹스 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에 있는 이승원이라는 사람이 쓴 [91년 5월 투쟁과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 연구를 위한 시론]은 도대체 누가 보라고 쓴 글인지 의심스러운 글이다. 내용은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글 자체도 매우 어려운 외래어와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로 가득 들어차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식의 어색한 말투와 비문들도 상당했다. 번역한 글이 분명 아닐진대 어찌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었다.
- 몇 가지 눈에 띈 대목 정리.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견해로 말미암아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서 싸울 것이다." 볼테르 Voltaire (p. 21)
"사상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홈스 Homles 대법관 (p. 21)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 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p. 22 - 23)
"죽음은 투쟁의 시발이자 대중적 공분의 소재였지만, 활동들을, 대중들을 지치게 했다. 더군다나, 연이은 분신이라는 한국 운동사의 상징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 죽음을 등뒤에 매고 나아간 거리에서의 투쟁은 악순환을 낳았다. 죽음을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닌, 관성적 의례로 파악한 점이다. 더 이상 죽음과 분신 자체가 전국적인 불만의, 저항의 계기가 되지 못했다." (p. 153)
"운동이란 것이 더 이상 짧은 시간에 승부가 나는 격정의 배설구가 아님을, 그것도 역시 자본주의하의 다른 삶의 모습처럼 힘겹고 지루한 일상과의 싸움임을 그때 이후 지난 몇 년의 현실이 가르쳐 주어온 것이다." (p. 171)
"이 사회적 잔여, 이름 없는 자들, 즉 5월 투쟁의 참여자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들이 아니라, 바로 민주주의를 보편주의적 폭력과 전체주의적 함정에서 구출하여 민주주의적으로 만드는 '긍정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p.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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