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실 지경이다. 맞다.

일단 연말에 펑펑써대는 걸 막기 위해서, 예산을 다 쓰지 않고 국고로 환수하면 그 중 몇 %를 해당 주무부처 직원들에게 보너스 형식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시행하면 이런 못된 행태들이 고쳐질까? 인사고과에도 반영하고 말이다. 아, 물론 일년간 예정된 일들을 제대로 했는지 확실히 점검하는 것은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문제이고. 놀기만 하면서 돈을 안쓴 것은 자랑이 아니니까.

참... 다시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면서도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날 만큼 한심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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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sun4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90

 

12월의 열병(熱病)  
[강준만 칼럼] 
 
 2008년 12월 23일 (화) 09:02:09 강준만  kjm@chonbuk.ac.kr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목록을 당 예결위 전문위원실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 전문위원실은 의원들에게 목록 제출을 독려하면서 이를 ‘절대 대외비’로 분류했다고 한다. 당측은 이 목록들을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고스란히 건네 예산안 편성에 반영시킬 계획이다.”(동아 11.3)

 

“중앙 및 지방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연말이 되면 불용예산을 쓸 궁리를 하느라 이른바 ‘12월의 열병(熱病·December fever)’을 앓는다. 감사원에 적발되거나 정부 예산낭비신고센터에 접수되는 ‘연말 예산 낭비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는 2004년 12월 14일부터 보름 사이에 132만 원짜리 옷걸이를 비롯해 50건의 가구 및 사무기기 구입에 7억3700만 원을 썼다. 예산을 절약해 남기면 다음 해 예산 편성 때 그만큼 삭감당하고 ‘무능하다’는 소리나 듣는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누구도 아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연말마다 벌어지는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 불요불급한 장비 구입, 외유성 해외출장이 대표적이다. 해마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공직자들의 의식과 예산 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다.”(동아 11.5)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예산 끼워넣기'가 18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나라의 살림 규모가 적정한지를 따지고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상임위별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이 여전히 지역구 예산 챙기기 수단으로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국민 11.20)

 

“올해에도 '불용(不用) 예산 탕진병'이 심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남은 예산 쓰기에 안달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공사판을 지나며 국민들은 부아가 치민다. 국민들은 불황 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조여 매는데, 공직 사회는 남은 예산 처리에 골몰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10년이 되지 않은 보도블록은 바꾸지 못하게 했다는 정부 지침은 어디로 갔는지 국민들은 영문을 몰라 한다. 어디 보도블록 뿐인가. 연말이 되자 공직 사회에는 불요불급한 물품 구매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예산이 제 돈인 양 사무용품 비품, 심지어 전자제품 구입에 펑펑 써댄다. 한 행정기관은 복리후생비 집행 잔액 1억여 원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고도 공복을 자처하는가.”(한국 12.3)

 

“일요일인데도 짙은 색 양복을 차려입은 30∼40명이 계수조정회의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후 3시 반경에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의원들과 눈이라도 한 번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기 시작하자 국회본청 6층은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온 공무원들로 붐빈다. 이들은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어떻게 됐어?’라며 흘러나오는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년도 예산이 본격적으로 심의되는 이때쯤이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공무원들은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른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뚜렷했다.”(동아 12.8)

 

“이번에 예산을 다룬 예결위원은 5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예산 요구서 자체를 처음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행정부에 경험이 있다 해서 누구나 예산 요구서에 적혀 있는 숫자의 이면(裏面)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산을 모르는 사람이 예산을 다루는 것은 눈먼 사람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한가지다. 그나마 이 예산 초보자들은 국회의장단 선출이 늦어지면서 8월 말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올 한 해 이렇게 '수습(修習)'을 거친 위원들 대부분이 내년이면 바뀌고 새 초보자들이 예결위원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지난 2년 예결위원 교체 비율이 각각 88%, 90%였다. '당신 한 번 했으니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정당판 평등 심리는 예결위가 임기 2년의 상임위가 아니라 1년짜리 특위 형태를 못 벗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은 예결위원을 2~5년씩 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런 실정이니 사업별 심사는 엄두도 못 낸다. 소위(小委)에서 지역구 민원이나 몇 건 해결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 세금이 어디서 얼마나 새나가는지도 알 리가 없다. 소위 핵심 위원들은 온갖 청탁을 수십 건씩 들고 다닌다. 작년 소위엔 사업 예산에 청탁자 이름을 써넣은 문서가 나돌기도 했다.”(조선 12.11)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위 기사들을 읽고나면 누구나 “예산 문제를 이대로 두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건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라는 점이다. 언론도 연례행사처럼 의례적인 비판을 할 뿐 “이대론 안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예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민운동단체도 없다. 왜 예산 문제는 개혁의 영원한 성역으로 남아있는 건가? 예산 문제가 바로 잡히면 한국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혹 이 대변화가 두려워 그러는 건 아닐까?

 

두가지 대변화만 말해보자. 우선 지역주의가 해소되거나 약화된다. 한국사회의 영원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지방 사람들이 지방의 이익에 충실한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물론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방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지역 출신이 중앙 권력을 장악하는 게 자기 지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예산 배정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다는 뜻이다. 만약 예산 분배 과정이 중앙 권력자들의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지역주의 투표를 해야 할 이유는 사라지거나 약화된다. 이런 대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두 번째 변화는 지방자치의 내용과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선거 구호는 “나 중앙에 줄 있다”는 ‘줄 과시론’이다. 줄이 튼튼한 사람이 예산을 지역으로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줄’은 아무래도 전직이 화려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학벌도 좋아야 학연을 이용할 수 있다. 아무리 성실하고 청렴하고 유능한 일꾼이라도 ‘줄’이 약하면 선택받기 어렵다.

 

창의적 혁신도 대접받지 못한다. 자치단체장의 유능도는 ‘줄’을 이용해 중앙에서 많은 예산을 끌어오는 걸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부의 창의적 혁신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또 여기에도 이른바 ‘프랙털’ 현상이 일어나 모든 지방자치 과정에서 ‘인맥’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 정치적 능력이 있다는 건 곧 인맥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창의적 혁신은 인맥 관리에나 적용될 뿐이다.

 

이처럼 예산 문제가 한국 정치와 지방자치의 내용을 결정한다. ‘예산결정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산 분배 과정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크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분야에선 제법 선진적인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이 분야만큼은 계속 최악의 낙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정치의 콘텐츠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걸 두려워하는 자들의 음모나 농간 때문은 아닐까? ‘12월 열병’의 상징이라 할 갈아 엎어진 보도블록 사이를 걸으면서 생각해보자.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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