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짧은 생각, 조각글이라는 뜻으로, 예전엔 개나 소나 많이 썼지만 요즘은 보기 힘든 표현.
1.
왜 11월 12일 단상이 아니고 11월 단상이냐면...
11월에 다시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2.
올해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쏜 살 같다'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사실적인 표현 같다.
3.
오늘도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게시물들을 읽었다. 왔다가 흘러 지나가는 글들, 생각들.
그 중에 간혹 눈에 띄는 글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인 사고 기사나 혐오 조장글들이다.
시대가 그런 시대인 모양이다.
4.
내 20대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어둡고 찌질했다.
정치, 역사, 신앙, 신학, 해방, 전대협, 한총련, 주사파, NL/PD, 쇠파이프, 화염병, 사수대, 짝사랑, 가난...
누군가들은 찬란한 20대 젊음이라지만, 내 20대는 그랬다. 어둡고 찌질했으며, 불안하고 공허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감정 하나, 내 스스로 늘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느낌...
무엇이었을까, 그 극심했던 자기비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열등감/열패감이었을까?
30대로 접어든 후에야 비로소 조금은 덜 찌질한, 안정적인 삶이 되어갔던 것 같다.
뒤늦게 철들기 시작한 것이었으리라. 세상에 적당히 길들어가기. 적당히 무뎌지고 적당히 타협하게 된...
언젠가의 노래처럼 결코 철들지 않겠다던 다짐이 희석되기 시작한...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아니, 상상으로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대학시절도 싫고, 군대시절은 더더욱 싫고, 취준생 시절도 싫고, 신입사원 시절도 싫다.
지금이 좋다.
5.
내 경우엔 중학교 시절의 취미였던 프로그래밍이 직업이 된 특이한 케이스.
IMF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전공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군 전역 이후엔 더더욱.
대체 전공은 어디다 쓰나. 그 많은 시간과 그 많은 돈을 들여 투자했던 전공 공부는 뭐였을까?
학문으로서도, 진로로서도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전공. 화학공학.
화학공학은 내가 관심있어 했던 그 "화학"이 아니었다. "공학"이었을 뿐.
6.
지금은 많이 버렸고, 또 버려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내 의식 한 구석엔 '그것'이 숨어 있음을 느낀다.
뭐라 표현할까, 그것을? 과대망상? 선민 의식? 엘리트 의식?
지금의 이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한 내 현실을 부정하고
뭔가 더 크고 위대한 일, 인류사, 적어도 대한민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일을
언젠가 꼭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런 느낌?
사실 내가 잘 하는 일과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을 이제는 너무나 명확하게 잘 알고 있다.
내가 잘 하는 일을 아무리 잘 해봤자 소시민적 소시민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하지 못하는 일은 이제와서 아무리 노력해봤자 평균 수준이 되기에도 어려울 거라는 것 또한.
이런 주제에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건... 이건 마치...
사지도 않은 로또로 1등 대박나길 바라는... 그런 것일까?
7.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은 없으며 없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분명히 있다. 바로 돈.
돈이 많이 되는 직업이 귀한 직업이 되고 돈이 안되는 직업이 천한 직업이 되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렇다고 도박꾼이 귀한 직업일 수는 없겠지만. 도박꾼 비스무리한 직업들이 귀한 직업인 것도 맞다.
저마다 자기 달란트에 맞는 일을 자기 달란트에 맞게 하는 "역할 분담 사회"는
애시당초 급여 수준의 차이에서 무너진다. 빈익빈 부익부... 그렇다고 사장님은 늘 나빠요일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할 날이 오긴 올까? 단결하면 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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