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사실' [손호철 칼럼] 쌍용차 관련 정세균 대표에 대한 '사과'와 새로운 의혹 기사입력 2010-02-01 오전 8:32:00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의 민주당과 진보개혁진영의 패배는 처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패배보다 더 처참한 것, 한심한 것은 그 같은 처참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왜 이 같은 패배를 당했으며 다시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혁신의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중략) 2001년 김대중정부는 홍삼게이트로 상징되는 각종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낡은 3김정치를 혁파한 국민경선제의 도입과 노무현 바람은 불가능할 것 같은 정권재창출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이처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국민경선제의 바람과 같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혁신이 없을 때 민주당의 부활과 정권재탈환은 요원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쌍용차 문제만 해도 그러하다. 올 여름 쌍용차 노동자들은 생명을 걸고 77일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영웅적인 투쟁을 했다. 사실 쌍용차 문제는 노무현정부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해외매각을 강행해 일어난 일이다. 그것도 정세균 현 민주당대표가 산업자원부장관으로 사실상 해외매각을 총지휘했었다. 따라서 쌍용차 문제가 났을 때 정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현장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당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해외매각을 강행했지만 이제 보니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쌍용차 노동자들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이명박정부에게 올바른 해결책을 촉구하는 책임지는 자세, 국민을 감동시키는 자세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 같은 태도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노무현전대통령의 진정성과 자기성찰이다. 노전대통령은 최근 출간된 『진보의 미래』에 실린 육성인터뷰에서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의 유연성을,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며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은 불행한 대통령"이라는 뼈아픈 자기반성과 성찰을 보여줬다. 그러나 민주당의 자기성찰은 노전대통령의 성찰에 10분의 1도 못 미치는 것 같다.
긴 인용이지만, 위의 글은 필자가 연초 민주당의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모임'에서 민주당에 대한 쓴 소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발제한 '민주당,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글의 일부입니다. <프레시안> 2010년 1월 14일자에 전문이 실린 이 긴 글(☞칼럼보기)에서 나는 민주당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민주당이 다시 태어나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민주당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발신자가 '민주당 민원법률위원회'로 되어 있는 이 편지는 필자가 국민모임 토론회에서 보여준 "애정 어린 고언과 충고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는 것을 전제로 필자의 글이 "중대한 사실관계 오류를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관계로 인한 실추된 명예훼복을 위해 공개적인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청드리며, 이울러 프레시안 등 언론에 게재된 귀하의 발제문을 삭제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 정정보도 등 법에 보장된 절차를 통해서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겠"다는 통보였습니다.
이 편지가 지적하는 "중대한 사실관계 오류"란 위의 인용 중 "그것도 정세균 현 민주당 대표가 산업자원부장관으로 사실상 해외매각을 총지휘했었다"는 부분으로서 "정세균 대표는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시절 그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고, 직무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쌍용차 해외매각 당시 정대표가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쌍용차에 대한 결정과 전혀 관련이 없고 산업자원부장관의 직무범위를 넘어 쌍용차 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반박입니다.
문제된 부분에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쌍용차문제로 노동운동과 이명박 정부가 충돌했지만 해외매각으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 노무현 정부이었기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가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정대표가 쌍용차 해외매각 당시 자동차산업을 총지휘하는 산업자원부장관으로 쌍용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결정에 핵심적으로 관여했을 것인데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 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물론 필자가 노무현 정부 하에서 쌍용차 해외매각 결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가를 취재한 바 없습니다. 다만 경제부기자를 지냈고 정치학자로써 정책결정과정 등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자원부 장관이 쌍용차 처리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해 정 대표가 "사실상 해외매각을 총지휘했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산업을 관장하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쌍용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과 "전혀 관련이 없고", 쌍용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이 산업자원부 장관의 "직무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니, 그래서 정 대표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쌍용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니, 의아하기만 합니다.
필자는 민주당의 이번 정정보도 요청이 누구의 결정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정세균 대표는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시절 그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고, 직무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정 대표 자신이나 최소한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 정 대표의 행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핵심 측근의 진술과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정 대표나 그 측근이 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필자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직무범위에 대한 건전한 상식을 너무 믿고 글을 쓴 것에 대해 정정을 하고 정 대표에게 사과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 정 대표 측이 주장하는 '사실'이 '사실'이라면, '사실'이 '상식'을 배반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누가 국방장관이 국군의 이라크파병에 전혀 관련하지 않았다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문제의 문장을 일단 "그것도 정세균 현 민주당 대표가 당시 자동차산업을 관장하는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해외매각과 무관한지 의심스럽다"로 바꾸도록 <프레시안>에 요청하겠습니다.(프레시안은 기고자인 손 교수의 요청에 의해 해당부분을 수정했습니다. 편집자)
그러나 어쩌면 더 큰 문제가 남습니다. 자동차산업의 미래와 관련된 쌍용차 해외매각 같은 중요한 결정이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시절 그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고, 직무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니 정 대표가 산업자원부 장관으로써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입니다. 주요 자동차회사의 미래에 대한 결정이 산업자원부 장관의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다? 정책학 교과서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해괴한 주장입니다.
그리고 정 대표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얼마나 기본 상식이 없는 한심하고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자기고백이자 자기고발입니다. 또 이를 통해 우리는 왜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이 그처럼 무능했는지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주요 자동차회사의 미래에 대한 결정이 자신의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이에 개입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들이 모여 쌍용차 해외매각과 같은 주요결정을 내렸다? 그런 노무현 정부가 잘 될 리가 있었겠습니까?
이 문제를 둘러싼 쟁점이 이러하기에, 정 대표 측이 최소한의 두뇌가 있다면, 정대표가 쌍용차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살자고 노무현 정부를 자동차산업의 대한 주요결정에 주무장관을 배제시킨,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사이코 정권'으로 매도하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아니 자신도 직무유기를 한 '무능장관', '무책임장관'이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멍청한 짓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가 정 대표였다면 설사 쌍용차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반박을 하느니 침묵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자신에게 피해가 오더라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로 한 정 대표측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글이 정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이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정 대표 측의 충격적인 자기고백과 자기고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평가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 대표의 '산업자원부장관으로서의 직무유기'에 대해 국민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합니다. 한 마디 더 하자면, 민주당이 필자와 같은 학자들의 고언에 대해 지엽적인 문제를 갖고 법률적 시비를 할 여력과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과 노력을 자기혁신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투쟁에 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 할 일 없이 한가한 민주당입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말로 쌍용차 해외매각과 전혀 무관한 직무였다??
빅뉴스감이다.
정말 대단히 큰 일이다.
와우... 놀랍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 인터뷰 내용이다.
노동유연성을,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을 후회했다니, 그정도로 자기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었다니, 진정 훌륭한 대통령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