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격’ 높이는 지름길 보안법이 폐지되고, 굶는 아이가 없고, 언론의 독립 의지가 공고해지고, 재벌기업이 정치기구를 사유화하는 일이 없어야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진다. [129호] 2010년 03월 04일 (목) 09:43:20 고종석 (저널리스트)
이정부 들어서 언제인가부터 ‘국격’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특히 대통령이 ‘국격을 높이겠다’는 말을 쓰면서부터 매스미디어의 국격 타령이 흔하게 되었다. 국어사전에는 표제어로 오르지도 않았지만, ‘국격’이 ‘나라의 격(格)’을 뜻한다는 것은 한국어 사용자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국격’이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시민 개개인의 인격을 고스란히 합산해 평균을 낸 것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격과, 그 개인들이 모여 이룬 나라의 격이 무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개인의 격처럼, 나라의 격에도 한눈에 짚어낼 수 있는 부분과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른바 출세한 사람의 격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보다 높다 할 수 있다. ‘세속적 위계’라는 뜻의 ‘격’이다.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낸 어느 정치인은 퇴임한 뒤, 이야기 상대가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다며 어느 토론 프로그램의 초청을 사양한 일도 있다. 그러나 그 격이 인격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격을 견주고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드물지 않게, 그 언행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직 장관의 격이 여항 장삼이사의 격보다 반드시 높다 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국격도 그럴 것이다. 잘사는 나라의 격은 가난한 나라의 격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힘센 나라의 격은 힘이 약한 나라의 격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의 국격은, 거칠게 환산한 ‘국력’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는 미국의 국격이 소말리아의 국격보다 높고, 일본의 국격이 한국의 국격보다 높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올림픽 메달을 많이 따내는 것이나,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일일 수 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우두머리를 배출하는 것도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럴 때 국격은 물리적 수준의 국력을 뜻하거나 그 국력과 거의 겹친다.
개인의 격에도 또렷한 부분과 흐릿한(그러나 결코 덜 중요하진 않은) 부분이 있듯이, 국격 역시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다. 전직 장관의 격이 장삼이사의 격보다 반드시 높다 할 수 없듯, 힘센 나라의 격이 힘이 약한 나라의 격보다 반드시 높다고는 할 수 없다. 국격은 그 나라 바깥에서 보면, 요즘 유행하는 속언으로 ‘국가 브랜드’다. 그런데 그 ‘국가 브랜드’가 물리적 국력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또 국격은 내부자 시선으로 보면, 국민국가 시민의 자부심과 깊이 관련돼 있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 역시 국력에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 자부심이 부분적으로라도 명예심과 포개진다면, 다시 말해 일정한 윤리적 바탕을 지닌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1930년대 이후 10여 년간 독일은,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에서 가장 힘센 나라였다. 그러나 흔히 ‘제3 제국’이라 부르는 당시의 독일에 자부심을 지닌 독일인은 오늘날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미국·중국을 ‘국격’ 1·2위 국가라 할 수 있나
물론 ‘국가 브랜드’가 꼭 물리적 국력에 비례하지 않듯, 제 나라에 대한 긍지(애국심?)가 국격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국격을 따져보는 것은 그 나라 문화의 양상을 가늠해보는 것이기도 할 텐데, 문화는 한편으로 상대적인 것만큼이나 다른 편으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힘센 나라이고, 국가에 대한 시민의 일체감이 매우 큰 나라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격이 이 행성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다. 사실 가장 힘센 나라 미국조차 최상위 국격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범죄자를 공개 처형한다거나 세계의 모든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하는 나라들을 놓고 국격을 따지는 것은 차라리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범죄와의 전쟁’이나 ‘테러와의 전쟁’에서 자부심을 끌어내는 중국인이나 미국인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괴팍한 자부심은 당사자 개인의 인격과 함께 그들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린다.
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의 국격이 지금보다 높아지기를 바란다. 그 높아진 국격의 대한민국에 국가보안법 같은 야만적 법 규범은 없을 것이다. 공권력 집행은 절도를 잃지 않아 용산참사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가난해서 밥을 굶는 아이도 없을 것이며, 언론의 독립 의지가 공고할 것이고, 이주노동자를 학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재벌기업이 정치기구를 사유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 슬프다... 국격.
나도 고종석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짧은 말 안에 최근의 정치·사회 풍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의 국격이 지금보다 높아지기를 바란다. 그 높아진 국격의 대한민국에 국가보안법 같은 야만적 법 규범은 없을 것이다. 공권력 집행은 절도를 잃지 않아 용산참사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가난해서 밥을 굶는 아이도 없을 것이며, 언론의 독립 의지가 공고할 것이고, 이주노동자를 학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재벌기업이 정치기구를 사유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