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첼로를 잘 켠다는 얘기를 들은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왜 ‘첼로를 켜는 노회찬’을 널리 알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향응 제공’이 된다며 웃어넘겼다. 무엇이든 잘하기보다는 좋아하고, 좋아하기보다는 즐기라던 공자님 말씀대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이의 에두른 답변이었는데, 최근에 나온 책(<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에는 첼로 켜는 그의 모습이 표지에 실렸다. 그를 진보정당에 몸담게 한 게 촌철살인을 구사하는 의식보다 첼로를 즐기는 정서라고 보는 건 내가 지나치게 정서를 중시하는 탓일까.
그의 말대로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예술을 무조건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그가 꾸는 꿈속에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가 담긴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1979년 10월27일 새벽,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전한 하숙집 주인과 이른 아침부터 말없이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는 그의 정서는, 말하자면 여럿이 함께 길을 가다가도 한둘에게 문득 멈추게 하는 그 무엇이다. 설령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없더라도.
70년대 초, 아직 인터넷은커녕 복사기도 없던 시절, 필사로 옮긴 이와나미서점판 <공산당선언>이나 <모순론> <실천론>을 돌려가며 읽던 시절이 꿈같은데, 20여년 만에 돌아온 땅에서 그때 깨알같이 쓴 대학노트를 공유했던 사람들 가운데 진보정당에 몸담은 이는 없었다. 그 흐름은 전대협 ‘의장님’들을 비롯한 반열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세상과 세월이 살아남게 하는 것은 이념보다 이념 속에 감춰졌던 권력 지향의 욕망인 듯하다.
이념은 인간의 본디 정서를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들씌워진 이념이나 욕망에 억눌렸던 본디 정서를 해방시킬 수 있다. 이른바 의식화가 중요한 이유는 이 점에 있다. 그래서 앞에 나서지 못하고 주위에서 서성대던 사람들 중 지배세력이 주입한 이념과 욕망체계에 의해 억눌렸던 인간 본연의 정서를 되찾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그런 이들이 아닐까. 그래서 진보신당을 노회찬·심상정뿐인 ‘노심정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성 발현에 대한 모독이며 대부분의 경우 함께 가지 않는 자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분단 상황의 엄중함이 살아있는 곳에서 집권 가능성도 먼 신생 진보정당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겠는가. 명분과 실리의 황금분할이 가능하다고 믿는 약삭빠른 사람들이 찾는 곳은 분명 아니다.
지난 칼럼들에서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면서 연합의 절실성을 강조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는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함께 노회찬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터다. 민주정권 아닌 ‘민주당 정권’ 10년을 경험하고도 ‘묻지마 연합’을 주장하느냐는 날선 비판과 비난은 밟고 올라설 둔덕이 될 수 있다면 즐겁게 감당할 일이었고 그 정서들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말했듯이 ‘별일 없이’ 살기 때문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노 전 대통령이 깊은 회한처럼 술회한 ‘노동유연성 강화’에 관해 성찰하거나 발언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더 뻔뻔한 자들의 존재가 그들의 거의 유일한 존재이유인가. 계량적 합산으로는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흔들 수 없기에 내 깐에는 질적 변화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민주당에 건 기대는 감성 과잉이 저지른 오류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첼로를 켜는 노회찬. 그 또는 그와 같은 정서의 소유자가 시청이나 국회, 또는 청와대에서 첼로를 켜는 모습을 꿈처럼 그려본다. 파블로 카살스나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거장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이기에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