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010년 8월을 아주 특별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강제된 “병합”의 100주년이며, “도둑처럼” 찾아와 결국 분단으로 이어진 “해방”의 65주년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을 기념하는 방식은, 각자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민족주의적 성향의 한국 원로 지식인과 일각의 일본 온건 좌파 지식인들이 최근 “한일병합조약이 원천 무효”라고 같이 성명서를 낸 일이 있었다. 당연히 옳은 말이고, 한 세기 전에 자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껴 속죄하려 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연대는 매우 고맙지만, 이 성명서를 읽으면서 왠지 허전함을 느낄 뿐이다. 한국의 식민화가 불법이었다면, 지금 미국이 대한민국의 군사적 협조까지 받으면서 진행하려 하는 아프간의 사실상 식민화 프로젝트는 과연 무엇인가? 정말로 한국의 독립투사나, 이미 100년 전에 “병합”의 불법성을 선언했던 일본의 초기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의 반제투쟁을 이어가자면 이미 몰락한 일제뿐만 아니라 지금 몰락해가는 도중에 온갖 발악을 해대고 있는 미 제국까지도 혼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한국의 원로들은 너무나 온건한 편에 속한다.
민족주의보다 국가주의적 사고가 더 강한 국내 극우진영은, 힘이 없어서 일제로부터 “병합”이나 당하고, 자력이 아닌 미국·소련 등의 힘으로 “해방”을 맞이한 과거의 조선과 “60만 대군”의 군사 중진국이자 산업대국인 대한민국을 대조하면서, “우리들의 성공”을 자축하느라 여념이 없다.
과연 그렇다. 100년 전 같았으면 일본이 부설한 철도에 땅을 강제로 빼앗긴 조선 농민들이 절망해서 자살하곤 했다면, 이제는 포스코가 건설하려는 인도 오리사주 제철소 부지에 여태까지 살아온 원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여지와 강제이주가 전 인도의 인권단체들이 주목하는 주요 이슈가 됐다. 100년 전 같았으면 일본인 관리자들의 조선 노무자에 대한 폭력과 폭언이 문제되곤 했는데, 이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기업인·관리자들이 중국 광둥성 둥관시에 진출해 거기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폭행함으로써 보기 드문 현지인의 반외세 시위를 촉발한 것이다.
역할 전도라고나 할까? 100년 전에 일제 자본이 식민지 조선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대표했다면, 이제 와서는 한국 자본들이 인도나 중국에서 국제적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역할 전도를 기뻐해야만 하는가? 임금 착취에다 차별과 폭력, 폭언을 당해야 하는 현지인의 의분을 사면서, 한국 기업들이 과연 “신흥시장 공략”으로 영원히 호강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기업인들의 아시아·아프리카인에 대한 태도를 보노라면, 메이지유신 때부터 갈망해온 “부국강병”에 성공했는데도 결국 조선과 중국의 민족주의를 적으로 돌려 패망하고 만 일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 관리자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중국인 노동자가 한국 자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100년 전 조선인들이 일본의 폭력적 순사에 대해 가졌던 감정과 정말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해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실은 내면화된 식민성으로부터 제대로 해방된 적은 없다. “탈아입구”를 선언해 서구에 대한 모방과 조선·중국에 대한 폭력을 겸행했던 일제처럼 영어 열풍과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단속·추방을 병행하는 대한민국은 “부국강병”에 성공하면 할수록 문화적 식민모국인 영미권에 대한 자발적 모방과 예속만이 심해질 뿐이다. 미국에 의한 한반도 남반부의 “해방”으로 식민지 엘리트들의 예속 대상이 바뀌었을 뿐 그 내용이나 형태는 그대로 남았다. 엘리트뿐만 아니라 이제는 광범위한 중산층, 서민층에게까지도 내면화된 식민적, 아류 제국주의적 심성들이 제대로 극복되어야 우리가 명실상부한 해방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가만히 보니, 박노자씨가 요즘 점점 발언의 "강도"가 쎄진다.
답답한 모양이다.
그래도 답답하다 못해 스스로 포기상태에 빠진 한국의 수많은 진보 지식인들보다는 아직은 나아 보인다.
그런데, 이 내용, 언젠가 많이 봤던 논쟁에서의 내용과 닮았다. 내면화된 식민성이라... 내면화된 파시즘...? 내 안의 파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