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 푸른숲 (2002-05) (읽음: 2003-01-30 11:30:19 AM)
- 진중권 지음
- "[남이 동성을 사랑하든, 이성을 사랑하든 내가 거기에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것들은 '찬성'이나 '반대'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 맥락이 아니다. 그걸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찬반을 표하는 그 행위 자체가 해괴하고 괴상한 일이다. 나아가 타인의 법적 권리 행사, 존재의 자연적 사실에 대해 제3자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데, 왜 이성애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가?]
- 본문 -
탁월한 윤리적 감수성, 칼날 같은 논리, 유쾌한 웃음으로 그려낸 한국 사회 폭력의 멘탈리티!
탁월한 윤리적 감수성과 폐부를 찌르는 명쾌한 논리를 무기로,
한국사회의 중심부에 완강히 똬리 튼 사이비 자유주의자, 파시즘적 극우주의자들을 향해 순발력 넘치고, 혈기방장한 풍자와 비판의 글을 써온 지식계의 자객, 진중권의 두번째 사회 평론집. 한국의 폭력적 상황에 대한 고발을 통해 학문과 현실 사이의 균열된 틈새를 비집고 종횡무진 가로지르기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망탈리테(정신상태)를 그렸다.
파업이나, 동성애, 사형제도, 지식의 가치 중립성 등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져온 이데올로기의 폭력성과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까지 날카로운 검을 들이대며, 이에대한 엘리아스, 벤야민, 르네 지라르, 카를 슈미트 등의 학문적인 글을 인용하고 저자 자신의 독특한 코멘트를 덧붙여,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집단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본질, 자유주의·보수주의의 실상, 거대 언론의 여론 조작, 지식인의 역할 등을 진지하게 논한다.
한 시사잡지의 '엑스 리브리스', 우리 말로 옮기면 '라는 책속에서'라는 뜻의 코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이 책은 '엑스 리브리스'라는 말뜻 그대로, 책에 실린 글들이 모두 '인용'과 거기에 붙인 코멘트로 이루어져 있다. 폭력, 죽음, 공동체, 처벌, 성(性), 공포, 민족 등 모두 12장으로 나누어, 60여편의 글을 실은 이 책은 독설과 직설어법, 조롱과 비아냥, 배꼽을 잡게 하는 유머, 풍자, 냉소로 흘러넘치는 진중권의 현란한 글들을 보다 감칠맛나게 엮고있다." (북토피아 책소개글)
- 2000년이었던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알게 된 이름. 그 이후로 항상 감탄과 예의주시의 대상이었다가 강준만과의 최후 '전쟁' 후 내 머리 속에서 시들해진 인물. '논리'의 대명사. 그의 책은, 그의 글들은 역시 시원하고 톡톡 튀는 맛이 있다.
- 진중권은 다분히 현학적이고 어려운 외국어의 인용과 사용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진중권의 글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 눈에 띄었던 대목 정리.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별은 오늘날 이단과 기독교인의 구별만큼이나 낡았다.' 맞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어진다. '[부르주아]를 상위 부유층 20%로 [프롤레타리아]를 나머지 80%로 이해한다면, <선언>의 문장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옳다.' 브라보." (p. 76)
"흔히 '자유=민주'라 생각하나 실은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경쟁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평등 없는 순수한 자유란 현실 속에선 결국 '다리 밑에서 잠잘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한편, '민주'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이념이다. 경제적 평등의 요구가 나아가 자유를 억누르며 관철될 때 공산주의라는 극단이 성립한다." (p. 97)
"소위 [자연주의적 논증]이라 부르는 이 주장은 (1) 먼저 동성애가 마치 '선택의 문제'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동성애는 결코 행위를 선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적 성향의 문제다. 아울러 이 견해는 (2) 종의 번식이라는 '류'의 목적을 곧바로 '개인'의 목적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라는 개인이 '인류의 존속'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아가 (3) 자연의 목적, 즉 종의 번식에 복무하지 않는 성행위를 모두 부도덕하다고 주장할 경우, 쾌락을 위한 성, 다양한 종류의 피임, 종교적-세속적 이유에서 행해지는 독신 등도 마땅히 부도덕하다고 해야 한다." (p. 165)
"침묵하지 않는 강준만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후의 근대적 지식인이다. '공정성'을 자처하는 그의 생각이 때로는 독단적이라 느끼고, 대중의 입을 자임하는 그 실천방식이 낡았다고 여기면서도, 그의 존재가 더없이 귀중한 것은, 자진해서 무덤으로 기어 들어간 지식인들을, 그 혼자 열심히 밖으로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데리다와 들뢰즈를 논하기 전에 강준만을 논해야 한다." 맞다. 시대에 걸맞은 새 지식인 상을 그리는 작업은 아마도 이 최후의 근대인을 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p. 191)
"우리 언론은 사건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보도를 사건한다." (p. 202)
맞다!! 절로 맞장구가 쳐지는 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서구에서는 'Nation'이라는 표현 속에서 '민족'과 '국가'가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서구의 민족주의는 곧바로 우익 이념이 된다. 반면 우리처럼 식민지를 거친 사회에서는 민족과 국가가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령 일제시대를 생각해보라. 당시 우리에게 '민족'은 있었어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민족'과 '국가'(=당시는 일본)의 구분과 대립이 존재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저항적 민족주의자들은 졸지에 좌익이나 용공으로 몰려야 했고, 과거의 친일파들은 반공을 무기로 휘두르는 국가주의자로 변신하여 서로 대립해왔다. 식민종주국인 서구와 식민지였던 한국 사회 사이에 가로놓인 이런 거대한 상황의 차이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민족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p. 266)
민족주의는 요즘 정말 화두다. 척결해야 할 이데올로기로 보는 시각이 요즘의 나름대로 한 '진보' 한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인 듯 하다. 그러나 지난번 [한강]을 읽고 나서도 조정래의 생각에 동감한 부분이지만, 민족주의는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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