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 실천문학사 (2001/03) 

- 박완서 지음

 

- "■ 작가 박완서의 등단 30년을 기념하는 책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이한 작가 박완서, 그가 5년 만에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1970년 등단 이래, 한국의 소설사의 큰 선을 그은 그는 이미 장편 14권과 단편집 11권을 통해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소시민의 일상, 여성문제, 죽음과의 대면 등 다양한 현실의 풍경을 담아냈다. 그러한 소설은 일상적인 삶을 생동감있게 표현함으로써 30년 동안 변함없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또한 한국 근대소설 어머니라는 칭호가 붙은 그는 올해 등단 30년과 더불어 고희를 맞아 각계의 기념행사 제의를 거절하며, "실천문학사 계간지에 분재한 「아주 오래된 농담」을 완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일흔의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창작력과 오히려 충성해진 젊은 감각은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특유의 재담과 필력으로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 "당신 뜻대로 살아질 것 같아?" - 생의 중심을 흐르는 농담, 바로 당신의 얼굴 앞에 거울을 갖다대는 소설 
박완서 소설의 오랜 축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허위와 위선을 꼬집어냈던 그는 이 소설에서 돈과 결탁한 인성 속에서의 권력과 눈가림, 그 속에서 태어나는 상처와 고통을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중심을 잃지 않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환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일-생명의 시한까지도-에 대한 주치의가 알고 있는 것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가족애를 빙자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족과,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적 통념과의 갈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해서이다> 여기까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면서 뭘 자본주의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돈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 작가의 말 中에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주인공들은, 자본화의 극치를 달리고 잇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잇다. 

■ 죽음과 탄생, 생명의 깊이에 대한 물음 
작가는 죽음과 탄생을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자본의 욕망으로 빚어진 돈과 권력의 병균이 인간의 본성인 생명, 죽음과 탄생에까지 감염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주인공들의 육체에 대한 인식과 육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죽음과 탄생의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것이 죽음과 맞닿아 있더라도 환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 옳은가? 죽음과 육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마저도 또한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태에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진실한 사랑과 실존적 사랑의 외줄타기 
또한 소설의 깊숙한 곳에 작가는 사랑의 두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진실한 사랑과 실존적 사랑, 그것은 남녀간이나 모자간을 떠나 존재하는 양면성이다. 실존적 가능성을 완전히 도외시한 진실한 사랑은 가능할 것이며, 진실성을 배제한 실존적 사랑의 가치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져야 하는가. 작가는 이 양면적인 사랑을 하나로 세워둔다. 이 뒤틀린 세상의 진실과 위선은 늘 공존하고 있으며 그 속의 인간상은 위태롭다. 늘 어디로 쓰러질지 모르는 동전을 굴리듯이 불안하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 거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내재한다. 

■ 줄거리 
자칭 재벌인 Y건업의 장남 송경호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이기적인 행태와 돈을 둘러싼 암투, 죽음의 소외와 맞물려 탄생의 불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이념에 대한 비판이 배여 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 심영빈의 매제인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그 하나이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심영빈의 결혼생활과 일탈, 현금과의 불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란 누이동생 영묘는 "오빠, 그 집은 좀 이상해. 우리 집하고 많이 달라. 그렇지만 우리 집이 옳고 그 집이 틀린 건 아닐 거야. 서로 다를 뿐이지."(82쪽)라며 시집의 질서에 순응해 보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남편 경호의 발병으로 인해 끝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암인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경호와 속수무책인 아내 영묘. 경호의 죽음은 송씨 일가 전체의 기획에 짜맞추어진 듯이 무지막지한 자본의 논리에 맞추어 착착 진행(?)될 뿐이었다. 즉, 송 회장 일가는 아들의 치료에서도 돈과 권력의 과시가 앞선다. 아들의 장례식을 찍은 장편의 비디오를 보며 뭐뭐한 인사가 참석했으며, 장례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성공적으로 치러졌는가를 과시하는 송 회장. 결국 아들에게 병명을 숨 것도 아들의 여린 마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실상은 유산에 대한 그의 결정권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였음이 드러난다. 

작가는 송씨 일가가 지배하는 우리 문명의 질서 이면에 또 다른 죽음의 의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일생 받들어 모신 나의 주인"(134쪽)이기도 한 그 몸에 대해 마지막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 된다는 것. 그런 죽음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주 진부하지만 또한 우리가 잊고 사는 진실임을 말하고자 한다. 의사로서 명성있는 심영빈은 초등학교 동창인 현금을 우연히 만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영빈에게 순수했던 한 순간으로 기억되던 현금과 자연스럽게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된다. 둘 사이가 깊어지다가 이혼녀로서 충족하고 자유분방하게 살던 현금은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다. 그러나 한광이라는 초등학교 동창이 하는 산부인과를 다니던 현금은 불임임을 확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빈의 아내 수경을 만나 자신의 위치를 개닫게 된다. 반면에 영빈의 아내 수경은 두 딸을 가졌지만 아들에 대한 욕심으로 계획된 출산을 준비한다. 아들 낳기를 강행하는 아내에 대해 영빈은 혐오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친구와 그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아내가 공모해서 만들어낸 착품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감동에 모르는 척 속아주지만 결코 감동할 수 없는 그의 감정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장삿속이 결합된 탄생에 대한 강한 비난을 담고 있다. 그러나 수경의 아들 낳기는 어머니로서의 지위가 아들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생명에 대한 신성함도 무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몸은 살아 있지만 정신이 먼저 소멸한 수경의 출산과, 열망은 살아 있지만 이미 몸이 쇠퇴한 현금의 불임은 이 작품이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양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죽음의 뒤틀림만큼 탄생의 뒤틀림도 극에 달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국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일을 시작하는 현금과 큰오빠의 도움을 받아 송씨 일가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영묘의 새출발로 끝을 맺고 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죽음과 탄생은 모두 돈의 속물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의 강고함으로 뒤틀려 있고, 죽음도 탄생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지 못하는 현실이 박완서의 독특한 필체로 그려져 있다." (인터파크 책소개글)


- 소설은 역시 읽는 맛이, 진도 팍팍 나가는 맛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은 긴장감도 없으면서도 살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늘 그렇듯이 '돈'과 '여성'과 '가부장제'와 '자본'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의사인 주인공 영빈과 15살 차이나는 여동생 영묘, 그리고 형 영준. 이들을 둘러싸고 한사람씩 추가되는 이야기의 전개방식... 아이러브스쿨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소재인 영빈의 어릴 적 친구들, 역시 의사인 한광과 영빈의 정부가 되는 현금. 그리고 영빈의 아내 수경. 영묘의 남편인 송경호, 그리고 그 시댁 식구들...

- 한가지 내내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의문은, 왜 남자들은 40대가 되면 늘상 '이야기 속에서는' 외도를 하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만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의 현실인가. 그렇게 가족에 대해서는 '의무'와 '책임'밖에 남지 않는 것인가.

- 이러한 의문은 섹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대부분의 소설이나 이야기속에서는 결혼도 안한, 아니 20대초반이나 10대들의 섹스장면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일까. 단순히 '그래야 장사가 되니까'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대부분의 현실인가.

- 결국 통속소설일 뿐인 이 소설도 저자의 다른 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불륜과, '낙태'라는 또다른 패륜과, '돈'과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악(惡)에 대해 고정된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전혀 남자 같지 않은 남자들의 말투들, 생각들... 구체적인 생활상을 통해 보여주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억압된 삶들... 

- 그렇다. 돈이라는 것은 없으면 천시되고 스스로 비참해질 수 있지만, 많이 가졌다고 해서 결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것이 진정 이 시대에 남겨진 하나의 진리인가. 

- 또 느끼는 거지만. 왜 책 제목이 '농담'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농담인지. 이야기 중간에 몇 줄, 그 '농담'에 대해 이야기가 적혀있을 뿐, 전체적으로 전혀 '농담'이나 거짓말과는 관계없는, '돈'과 '탄생과 죽음'이 중심 주제인데 말이다... 떱.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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